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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통영의 기원, 삼도수군 통제영

by 귤희아빠 2018.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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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가 통영이라고 하면 장가 잘 갔다는 소릴 종종 듣는다. 특히 선배들로부터.

결혼 12년차. 여름이면 빼놓지 않고 통영으로 휴가를 떠난다. 일단 통영으로 내려가서 처가에 베이스캠프를 차려 놓고 거제로, 여수로, 하동으로 다녀오는 식이다.

1년에 적어도 2~3번은 통영에 간다. 요즘은 더 자주 가고 싶어 진다. 통영의 매력은 무엇일까. 차로 5시간 걸리는대도 왜 자꾸 가고 싶을까.

처음엔 바다가 이뻐서 찾았고, 충무김밥, 꿀빵, 장어 같은 음식이 좋아서, 처가니까 찾았다. 요즘은 윤이상 음악당, 전혁림 미술관, 박경리 문학관 등 문화 예술 예향의 도시라서 더 찾게 된다.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 만든 봄날의 책방도 잊지 않고 찾는다. 글램306 같은 펜션도 좋다.

최근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랐다가 음악당의 바로 앞바다가 한산대첩의 바다라는 것을 알고 윤이상과 이순신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다.

통영을 더 알고 싶어 졌다.
통영이라는 이름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왔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통제영. 통제영의 줄임말이 통영이다.

1대 통제사가 이순신이었고, 최초의 통제영은 한산도에 있었다. 한산대첩 대승 이후, 삼도수군 통제영은 현재의 위치에 크게 지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난뒤 조선 조정은 육군보다 수군의 경쟁력을 높이 샀다. 1604년 9월 9일 삼도수군 통제영을 통영에 세웠고, 그 이듬해 1605년에 세병관을 지었다.

세병관은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목조건축물 중 가장 큰 넓이의 건축물로 꼽힌다. 삼도수군 통제영의 권위,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전국 주요 도시로 가는 8대 길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제영으로 가는 통영별도였고, 조선 시대 화폐였던 상평통보 동전을 만들었던 주전소도 통제영 안에 있었다. 통제영이 군사 조직만이 아니라, 경제와 민생에 미치는 영향력도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통영에 조선의 해군사령부(삼도수군 통제영)를 두었을까?
16세기 당시, 일본의 침입을 막는 것이 수군의 핵심 업무. 당시 배는 여러 사람이 노를 저어 움직였고, 일본의 배는 대마도를 거쳐 부산이나 여수쪽으로 움직였다.

거제도에선 대마도가 보였고, 대마도에서 배들이 부산쪽으로 가는지, 여수쪽으로 가는지 알 수 있었고 봉화로 이런 사실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선의 해군 사령부(삼도수군 통제영)가 통영에 자리를 잡게 된 것. 통영은 최초의 군사계획도시였다.

통제영의 군수 물자 제작, 중국 사신이나 고위 관리의 기념품, 진상품까지 만들었던 12공방엔 전국의 장인이 모여 들었다. 1895년 통제영이 문을 닫을 때까지 12공방의 장인들도 그 공예술을 발전시켜 왔을 것이다.

군사(전쟁)과 문화예술은 그렇게 함께 커왔다. 지금도 한산도 앞바다에 윤이상(음악당)과 이순신이 만나고 있다.

2018년 8월 1일. 폭염경보가 내렸고, 연일 폭염 기록을 갈아치워 40도가 넘었다. 통제영 세병관 마루엔 관광객들이 시원한 바람에 누워 쉬고 있다. 폭염도 잊었다.

세병관에서 내려다 보니, 왼쪽에 남망산 공원과 통영시민회관, 동피랑이 있고, 오른쪽에 충무교회가 보인다. 저 앞쪽엔 강구안의 바다가 보이고, 음악당 바로 옆 스탠포드호텔이 서 있다. 저 호텔이 없었다면 한산도가 보였을 것 같다.


통영의 기원이 된 삼도수군 통제영. 너무 늦게 찾아 왔다.
전쟁, 군사, 그리고 문화예술. 평화, 새로운 시작이 열리고 있다.

통제영 입구에 서 있는 벅수. 통영의 벅수는 장승 역할을 한다. 얼굴의 송곳니가 매력적이다. 

​세병관으로 오르는 지과문. 

​세병관 전경

​세병관 현판이 무척 크다. 내가 본 현판 중에 가장 큰 것 같다. 

​세병관 내부 모습.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쉬어 간다. 

세병관 내부에서 바다 쪽을 향해 바라 본 전경​

​삼도수군 통제영 안에 세병관 옆쪽에 있는 공방. 군수 물자 등을 만드는 곳이었다.

통제영 안에 공방에서 공예술이 발전한 나전 칠기. 예전에 부자집에 있던 '자개농'이었다. ​

염장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나는 처음에 염장이 음식과 관련된 것인줄 알았다. ​

조선시대 화폐로 쓰인 동전을 만들었던 주전소. 군인 조직의 강한 규율 속에 화폐를 만들고 관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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