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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명의 삼성전자가 8명의 루빈에게 진 이유는?

by 귤희아빠 201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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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삼성이 8명의 루빈에게 진 이유
기고_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사건과 대학교육
2011년 08월 22일 (월) 13:33:25 민병준 대구대 물리학과 교수 editor@kyosu.net

 

 
   
   
민병준 대구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핵심 사업 종목인 IT 분야의 선두에 서 있는 두 대기업 삼성과 LG의 짧은 안목을 드러내는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LG 는 세계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을 제작할 기회를 저버렸다는 것이고, 삼성은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의 개발자 루빈과 제휴할 기회를 차버렸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사업상의 결정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접어둘 수도 있겠지만, 삼성전자의 담당 본부장이 루빈에게 했다는 말은 결코 흘려들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루빈의 회사에는 8명이 있을 뿐이지만, 삼성전자는 2천 명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두 개의 큰 문제가 있다. 우선, 8명과 싸워서 진 2천 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것도 루빈의 회사는 일개 벤처 회사에 불과했고, 삼성은 전국의 인재가 입사하려고 애쓰는 대기업이다. 다음으로는, 적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삼성전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이 기본적으로 능력이 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생물학적인 근거를 댈 필요도 없이, 인간의 능력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법이고, 더구나 국가 단위의 집단이라면 어느 나라라도 재능 있는 사람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가정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교육이고, 창의성이 계발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참혹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고, 그 실패를 거울삼아 전진하기는커녕 하루하루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2천 명으로 8 명을 당하지 못한 이유는 물론 교육 체계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교육은 거창하게 논의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간단하다.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지 말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하나의 기계로 만들려는 교육 제도 앞에서 학생들은 절망한다. 도대체, 교육 단계에서 경쟁의 논리가 도입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학생이 흥미를 갖는 분야를 골라서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면 그만이다. 경쟁은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서 시작해도 충분하다.

이 세상 어느 나라도 교육 단계에서 될 성 부른 인재를 골라내는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은 일각일초마다 더욱 도착적인 상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교육과학부가 '경쟁력 강화'나 '선택과 집중' 같은 부류의 알맹이 없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드러난다.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깨달으려는지 궁금하다.

'선택과 집중'이 새삼스럽게 구호가 될 필요가 무엇인지 그들은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언제 '선택과 집중'이 시행되지 않고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현대 사회의 복잡성에 비추어 인류의 예시 능력은 미천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지 못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인가. 그런 이유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결국은 우리 사회의 인적 기반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교육에 투자하는 돈이 아까워서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고, 사립대학을 설립자의 사유 재산으로 취급하는 교과부에게 이것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니 적어도 학부모들만이라도 자신들의 자녀를 기계로 만들려고 내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시적인 경쟁에서 뒤질지는 모르겠지만, 자녀들을 초기 단계에서 아예 망쳐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력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 삼성전자가 이렇게 적도 모르고 자신도 모를 정도인 줄은 솔직히 예상치 못했지만, 전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 그룹이 성균관대에 도입한 교수 사이의 업적 경쟁 체제는 창의력을 말살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창의력이 돈을 매개로 한 무한 경쟁에 의해 양성될 수 있다고 믿는 단순함은 소양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업적 경쟁에 내몰린 교수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창의성은 치명상을 입게 마련이다. 이 모두가 우리 국민 모두의 기본적인 철학이 천박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쯤에서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혀내어 노벨상을 수상한 막스 페루츠의 말을 되새겨 보자. "인구 5만의 도시였던 15세기의 플로렌스를 생각해보자.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기베르티, 마사치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거기에서 나왔다. 플로렌스의 통치자들이 그 도시를 위대한 예술의 도시로 꽃피우기 위해 조직적으로 지원한 적이 있을까. 19세기의 파리시 당국이 마네, 드가, 모네, 피사로, 르노아르, 세잔, 그리고 쇠라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상파 운동을 계획했을까. 예술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창조성은 조직될 수 없다. 그것은 개인적인 재능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다. 효과적인 연구소에서는 과학적 창조성이 촉진되지만, 관료적인 지배 구조와 산더미 같은 서류는 그것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병준 대구대 물리학과
필자는 아이와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고체계의 실제적인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과학 교육과 과학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교수신문>www.kyosu.net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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