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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하루키 "장편소설은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다"

by 귤희아빠 2018.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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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이영미가 쓴 <마녀체력>(남해의 봄날)을 읽고 마라톤을 하기 위해 달리기를 해보았다. 그동안 해오던 수영과 자전거도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수영 상급반인데, 연습량이 늘어날수록 '체력'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이어트를 위해 '근육'도 필요하다. 


그러다가 하루키의 책을 발견하게 됐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하루키는 장편 소설 쓰는 일을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라고 했다. 소설가는 재능과 집중력, 지속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집중력과 지속력은 훈련으로 좋게 할 수 있단다. 나도 몸과 머리, 마음을 골고루 단련시키고 싶다. 단단한 내 몸이 단단한 내 머리와 단단한 내 마음을 키워 갈 것이다. 요즘 이렇게 다짐하고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회고록>(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 2007)

제4장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111쪽~116쪽)


9월 10일에 카우아이 섬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2주일쯤 머물렀다. 

일본에서는 도쿄의 사무실 겸 아파트와 가나가와 현에 있는 집을 자동차로 오갔다. 물론 그 사이에도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오랜만의 귀국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여러 가지 일이 내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해가지 않을면 안 된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8월 만큼 자유롭고 한가하게 달릴 수 없다. 그 대신 한가한 시간을 찾아내서 장거리 달리기를 충분히 한다. 일본에 있는 동안 20킬로를 두 번 달리고, 30킬로를 한 번 달렸다. 하루 평균 10킬로를 달리는 페이스는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르막길을 달리는 연습도 의식적으로 했다. 우리 집 주위에는 높낮이의 차가 있는 언덕길 왕복 코스가 있고(아마도 5, 6층 빌딩 높이 정도는 될 것이다), 이 코스를 스물한 바퀴 달렸다. 시간은 1시간 45분. 지독하게 습하고 더운 날씨였기 때문에 이건 무척 힘들었다. 뉴욕 시티 마라톤은 거의 평탄한 코스지만, 모두 일곱 개의 큰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되고, 대부분의 다리는 현수교 구조이므로, 중앙 부분이 높게 솟아 있다. 뉴욕 시티 마라톤은 지금까지 세 번 달렸는데, 그 완만하게 높고 낮은 경사진 길이 길게 뻗은 코스가 생각보다 훨씬 다리를 무겁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남아 있는, 센트럴파크로 들어선 이후부터의 비탈길은 매우 가팔라서, 언제나 여기에서부터는 스피드가 떨어져버린다. 센트럴파크 내의 고갯길은 아침 조깅을 할 때는 그다지 힘이 안 드는 완만한 경사지만, 마라톤 레이스의 종반에 이곳에 접어들면 마치 장벽처럼 주자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겨놓았던 기력을 무자비하게 앗아간다.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결승점이라고 자신을 다그치고 격려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건 마음뿐이고 여간해서 결승점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목은 타지만 위는 더 이상 수분을 찾지 않는다. 다리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부근이다. 


나는 원래 고갯길은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코스에 오르막 길이 있으면 거기에서 다른 주자를 추월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라면 오히려 환영을 할 정도지만, 그래도 센트럴파크의 마지막 언덕길은 언제나 나를 맥 빠지게 만든다. 마지막 몇 킬로를(비교적) 즐겁게 달리고 전력 질주해서 웃으면서 골인하고 싶다. 그것이 이번 레이스의 목표 중 하나다. 


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하고 실례를 보여가며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기는 하지만)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간다. '이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무척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 쪽이 순서만 올바르게 밟아 나가면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습을 며칠 쉬어버리면, "어렵쇼, 이제 그렇게까지 힘쓸 필요는 없어졌구나. 아, 잘 됐다"하고 자동적으로 판단하여 한계치를 떨어뜨려 나간다. 근육이라는 것도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 들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 나간다. 그리고 일단 해제된 기억을 다시 입력할 경우에는, 또 한 번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야 한다. 물론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는 필요하다. 그러나 레이스를 눈앞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는, 근육에게 착실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건 말이야, 애들 장난이 아니야"라고 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펑크가 나지는 않을 정도로, 그러나 흔들림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 두어야 한다. 이 때의 전략은 경험을 많이 쌓은 러너라면 모두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있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단편소설집 <<도쿄기담집>>이 발간되었다. 그 때문에 인터뷰가 몇 개 있었다. 11월에 발간 예정인 음악 평론집 교정쇄의 퇴고와 표지 디자인의 협의도 있다. 내년부터 시리즈로 발행할 예정인 문고판 <<레이먼드 카버 작품집>> 교정쇄의 퇴고도 해야 한다. 문고판을 위해 기존의 번역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하고 싶기 때문에 이 작업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에서 내년에 발행되는 단편집 <<Blind Willow, Sleeping Woman(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을 위한 긴 서문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함께 이와 같은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도 짬을 내서-특별히 누군가로부터 청탁받은 건 아니지만-부지런히 써나가고 있다. 말없고 근면한 마을의 대장장이처럼. 


몇 가지의 실무적인 일도 처리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안, 도쿄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여성이 내년 초 결혼을 하기 때문에 연내에 사직하고 싶다고 갑자기 말을 꺼내서, 후임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여름 동안 사무실을 닫아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케임브리지에 돌아가자마자 몇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준비도 해야 한다. 


이만큼의 일들을 짧은 기간에 순서대로 처리해 나간다. 그리고 더욱이 뉴욕의 레이스를 위한 연습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몸이 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욕심을 내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중략>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무엇인가가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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