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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아버지의 안전모

by 귤희아빠 2019.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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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마음에 든다며 '갖고 싶다'고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바로 자전거였다. 


설 연휴 시작하는 토요일, 

오전 업무만 마치고 자전거샵에 들르신 모양이었다. 


"MTB가 뭐냐?"

"산악자전거요. 옛날에 타시던 거요."


"정말 가볍더라. 딱 마음에 들더라고, 50만원 하면 살려고 했는데..."

"내일 같이 함 가보까요?"

"......"


다음날, 아버지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어제 들렀던 자전거 가게 전화번호 같다고 하셨다. 


좀더 싸게 팔려고 전화를 했을까. 

아버지는 80만원에 팔면, 사겠다고 하셨다. 정말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아버지, 제가 사드리께요. 오늘 문여는지 물어 보세요."

오후 1시까지 가게로 가보기로 했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아버지가 자전거 가게로 다시 전화를 할려고 하신다. 

"아~ 안되겠다. 이렇게 비싼 거를..." 


잽싸게 아버지 핸드폰을 빼앗았다. "한 번 가서 보고 결정하지요, 아버지"


집에서 20분 거리의 중고자전거샵에, 사장보다 먼저 도착했다. 

자전거샵은 생각보다 작았다. 소박했다. 


아버지가 봐둔 자전거의 브랜드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에 검색해 보니 가격대는 뜨지 않는다. 


자전거를 들어 보니, 가볍긴 가볍다. 

중고 자전거지만, 새것 같았다. 


날렵한 MTB자전거. 22단 기어. 

키가 작은 아버지가 타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원래는 250만원짜리 자전거라고 한다. 

90만원에 사기로 했다. 나도 잠깐 타보니, 잘 나간다. 


속도계를 장착하고, 안전등도 붙이고,

새 물통에다 작은 가방도 달았다. 


자전거 헬멧은 있다고 하셨으니까, 헬멧은 됐고. 혼자 생각했다. 

자물쇠는 안보이네, 가게에 없다 보다. 


차에 자전거를 싣고, 집으로 향했다. 

나도, 아버지도 들떴다. 비만 안왔으면,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을 것이다. 


"맞다, 자물쇠를 안샀네."

"아버지, 애들하고 잠깐 놀러 나갔다가 사오께요."


집에 자전거를 내려 놓고, 

남동생은 동대구역에 데려다주고, 딸들과 신세계백화점에서 놀았다. 


저녁 먹으러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아버지 전화였다. 

"자물쇠 샀나?" "이제, 사 갈려고요."

"헬멧도 하나 사오너라." "헬멧 있으시다면서요?" "없어"


아이쿠, 그동안 자전거 타실때 헬멧도 없이 타셨구나. 

지금까지 허름한 자전거만 타시다가 제대로된 자전거를 처음 장만하시고 나니 헬멧도 갖추고 싶으셨나 보다. 


설 연휴 일요일 저녁 7시 무렵, 

문을 열어 놓은 자전거 가게를 찾아 헤맸다. 


인터넷으로 사서 보내드릴까. 

아니다, 기다리고 계실텐데... 다행히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다이얼 자물쇠, 파란색 헬멧을 샀다. 

자물쇠로 바로 자전거를 잠가 놓고, 헬멧도 바로 써보는 아버지. 


작은 방에 가보니, 방 한켠에 하얀색 안전모가 있다. 

앞쪽에는 '무재해'라고 적혀 있었다. 


아까, 헬멧 써보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안전모는 하나 구해놨는데, 글자는 지우고 카맣게 해서 쓸라카이 좀..."


금호강변 자전거 도로에는 수많은 자전거가 달린다. 

아버지도 이제, 씽씽 달릴 것이다. 헷멧도 쓰고, 속도계도 보면서. 


나도 설 연휴 내내, 아버지의 자전거가 흐뭇하게 내 마음을 달렸다. 

아버지의 '무재해' 안전모가 내내 가슴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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